시베리아의 푸른 눈과 마주하다
러시아 시베리아에는 ‘시베리아의 푸른 눈’, ‘성스러운 바다’, ‘세계의 민물 창고’라고 불리는 호수가 있다. 지구에서 가장 깊고 가장 오래된 호수, 바이칼이 그 주인공이다. 글 사진 청금
![바이칼 호수의 전경](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d0ac91e8-95a8-4604-b818-b5c78e3862d4.webp)
바이칼 호수의 전경
SNS에서 겨울 바이칼 호수의 사진을 보았다. 얼음 속으로 수중 풍경이 고스란히 보이는 이미지 그리고 크고 작은 기포의 형상이 얼음 속에 가득한 이미지 등. 홀린 듯 시선이 고정되었다. 너무나 깨끗하기에 얼음이 두꺼워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고 하얀 기포의 정체는 메탄가스로, 수면으로 올라오다 얼음 속에 갇힌 것이었다. 누군가 올린 그 몇 장의 사진 때문에 큰 바람이 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바이칼 호수](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946564d0-4b3d-45be-84db-76cec8beb3bf.webp)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의 수중 풍경](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124da6ed-5679-4edb-95a9-0927f900622e.webp)
바이칼 호수의 수중 풍경
'직접 보고 싶다. 그리고 내 카메라에 담고 싶다' 그리고 얼마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러시아 이르쿠츠크 바이칼 호로 떠나는 행운이 내 인생에 주어졌다. 인천을 떠나 목적지인 이르쿠츠크까지의 비행시간은 4시간 20분. 스마트폰에 담은 영화 두 편을 보고 나니 어느새 도착이다. 러시아 S7 항공기의 왕복 이용료는 60만 원 정도였는데,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없다는 것 외에는 모든 서비스가 맘에 들었다. 덕분에 좋은 컨디션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교적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을 나왔다. 매서운 추위가 달려들어 볼이 얼얼하고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현지 기온을 확인하니 영하 25도. 아! 드디어 러시아구나. 꿈만 같았던,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이 이렇게 현실이 되어 있었다.
![바이칼 호로 향하는 길](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f27958dd-d4fb-41bb-a341-9d38d4a0a15c.webp)
바이칼 호로 향하는 길
이르쿠츠크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잠시 차에서 내려 이르쿠츠크 아카데미 다리 위에 섰다. 호텔을 나서기 전, 서너 겹의 옷을 껴입고 핫팩으로 온몸을 둘렀는데도 뼛속까지 춥다는 말이 뭔지 실감이 날 정도의 혹한을 경험한다. 영하 28도, 체감온도 영하 35도. 감히 옷 밖으로 손을 내밀기 힘들 정도의 추위였지만 그럼에도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다리 밑으로 보이는 안가라 강과 상고대가 핀 나무 그리고 '다차'라 부르는 구 소련의 귀족 별장의 어우러짐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다차섬](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18fa0374-25f0-452b-80b0-e15bbe170611.webp)
다차섬
![다차섬](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0c25f4f2-0b1e-42d6-99ce-e7881ce07668.webp)
다차섬
![다차섬](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770ba561-23f5-4e3a-be05-009457a890e4.webp)
다차섬
다시 바이칼을 향해 달린다. 시내에서 바이칼 여행의 정점이 되는 알혼섬까지는 차로 4시간. 아침부터 혹한과 힘겨루기를 해서인지 졸음이 쏟아진다. 한 시간 정도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바깥 풍경이 궁금하다. 실외와 실내의 엄청난 기온 차로 살얼음이 덮인 유리를 손톱으로 긁고 눈을 들이대어 창밖을 보았다. 시베리아 평원의 파노라마 뷰가 끝도 없이 흐른다. 퍼뜩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이, 영화 '닥터 지바고'가 떠오른다. 내 상상 속 시베리아는 너무나 황폐하고 쓸쓸한, 형벌의 땅이었다. 하지만 단기 여행자의 눈에 비추인 시베리아는 그저 신비롭고 아름다운 설국일 뿐이었다.
![샤휴르따 마을](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35b4bc50-31c2-4e8a-9019-d98630463581.webp)
샤휴르따 마을
샤휴르따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호수를 건너 알혼섬으로 들어가면 바이칼 호수 관광이 제대로 시작되는 것이다. 여름에는 배, 겨울에는 얼음 위를 달리는 공기부양선 호버크래프트 그리고 한겨울 얼음이 매우 두터워지면 차를 타고도 알혼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호버 크래프트](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5e7863e1-8965-46f1-b7dd-16a267c8b61f.webp)
호버 크래프트
![호버 크래프트타고 알혼섬으로](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1e8580d5-9d8e-481b-bd9d-52b966937501.webp)
호버 크래프트타고 알혼섬으로
우린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5분 만에 알혼섬에 닿았다.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에 존재하는 26개의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또 졸음이 쏟아진다. 실내에만 들어가면 최면에 걸린 것처럼 이러니 신기할 정도다. 힘겹게 졸음을 떨쳐내고 바이칼 호수에서 보는 별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사진 포인트로 이동 후 보니 달이 너무나 훤하게 하늘을 밝히고 있다. 이런 날, 별 사진은 어렵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그냥 그 순간을 즐겼다. 바이칼 호수 위에 서서 바라보는 달이라니. 혹한의 기온인데 달빛은 참 따스하게만 느껴진다.
![바이칼 호](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eea7f5d5-c4ac-4aa2-98cc-5b13af452560.webp)
바이칼 호
바이칼 호수의 투명한 얼음과 일출이 만나는 이미지를 담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이 시작. 아침 6시에 숙소를 나와 알혼섬 북쪽에 위치한 우쥐르 마을로 이동한다. 노면 상태가 엉망이라 4륜 구동 자동차가 아니라면 절대 달릴 수 없는 길이다. 러시아 말로 식빵이라는 뜻의 우아직, 이름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의 우아직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데 모양은 귀여워도 태생 자체가 군사용이라 힘이 좋다. 그래서 거친 땅을 달리기에 최고다.
![바이칼의 교통수단, 우아직](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10ad65d8-db50-4ef5-83ae-f65458f984d4.webp)
바이칼의 교통수단, 우아직
흔들리는 차 안에서 몸은 힘들지만 이제 곧 투명한 얼음 속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행복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머릿속 그렸던 그 풍경이 아니었다. 며칠 전 눈이 제법 내려 얼음을 덮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두꺼운 얼음 조각이 쓰러진 도미노처럼 켜켜이 겹쳐 있는 모습, 거대한 고드름이 드리워진 동굴 안에 들어가 보는 경험 등 신기한 풍경이 가득했으니까. 영하 30도의 혹한이 잊힐 정도로 심장이 벅차올랐다. ‘지구의 푸른 눈 바이칼 호에 내가 서 있다.
![바이칼 호수의 전경](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f3bbd156-6d35-4f9a-8da1-321a525e5994.webp)
바이칼 호수의 전경
![고드름이 드리워진 동굴](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853ba86d-7fa5-4c11-b058-3b37e7fd2042.webp)
고드름이 드리워진 동굴
’우쥐르 마을을 떠나 부르한 바위, 사자 바위, 악어 바위 등을 둘러보았다. 얼음 위에 근사한 예술작품처럼 솟아 있는 바위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기운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그중에서도 알혼섬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부르한 바위는 종교지도자들의 기도처일 만큼 신령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란다.
![삼형제 바위](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bacfe86e-1562-4bb7-9dff-38e227641015.webp)
삼형제 바위
![삼형제 바위](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2352405f-ba8a-45a0-aaf3-4426ce341cc1.webp)
삼형제 바위
![사자 바위](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3e280bd0-5ae9-47f9-8efa-904ba2afc21a.webp)
사자 바위
부르한 언덕에 화려한 천을 휘감은 신목 세르게가 일렬로 13개나 세워져 있다. 부르한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광활하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의 가로 끝도 세로의 끝도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다. 전 세계 샤먼 지도자들이 기운을 받기 위해 이곳에 와서 기도한다는데 분명, 깊은 생각을 하고 깨달음을 얻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듯하다.
![부르한 바위](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965b8f27-7ddc-4f60-9d31-f86a973747f6.webp)
부르한 바위
![부르한 바위](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51f0e326-71db-460f-adde-809b31a65730.webp)
부르한 바위
이제 알혼섬을 떠난다. 전날에는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알혼섬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얼음 위를 걸어서 샤휴르따 선착장으로 돌아간다. 오후 4시가 지나자 하늘은 벌써 해거름으로 화사하게 물든다. 그 순간을 담고 싶어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점점 알혼섬과 멀어진다는 것이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본다. 거의 선착장에 닿기 일보 직전. 발밑 얼음에서 놀라운 그림을 발견한다. 호수 깊은 곳에서 올라오다 마치 마술에 걸린 듯 멈춰버린 하얀 기포,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림이다.
![바이칼 호수의 수중 풍경](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3ae6b454-aef4-4e55-aaac-ed0d7401872e.webp)
바이칼 호수의 수중 풍경
![바이칼 호수의 수중 풍경](https://cdn.3hoursahead.com/v2/content/image-comp/cc223364-0d2b-4af1-bde0-c0f9c73b9c01.webp)
바이칼 호수의 수중 풍경
타인의 SNS에서 보고 러시아를 꿈꾸게 한 바로 그 그림. 못 보고 돌아가는 줄만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린 만났다. 얼음 위에 바짝 엎드려 얼음 속을 들여다본다. 자연이 만든 신비한 세계가 그 속에 있었다. 작은 우주를 보는 것만 같아 황홀하기까지 하다. 하얀 기포 가득한 투명한 바이칼의 얼음. 그것은 분명 바이칼 호가 내게 주는 큰 선물이었다. 이로써 완벽한 여행이 되었다.